유다서 1장에서 유다는 적그리스도의 경계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이단자들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도 부인하게 만듭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이단자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이단에 빠지면 이성이 마비되어 본능으로만 행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결국 이런 자들은 이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따라가야 합니다.
천사장 미가엘의 변론(유 1:8-16)
• 1:8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
꿈꾸는 이 사람들 보통 사람들의 꿈은 비현실적이요 참된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실현성이 없는 허황된 것들을 욕심으로 이상(理想)을 삼고 실현시키고자 하는 자들이 꿈꾸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은 또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 동조하도록 가르쳐 꾀어 세상 주의, 육체 주의로 거침없이 나아가게 한다. 이와 같은 일은 이단들이 많이 하며 이단이 아니라도 영으로 살지 않고 육체와 세상 주의로 기울어져서 세상에서 잘될 것을 꿈꾸면서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자들은 다 꿈꾸는 자들이며 결국 실패하고 만다.
꿈꾸는 자들의 특징은 ① 소돔 고모라 사람들과 같이 육체를 더럽힌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고 음란 방탕으로 기울어져서 육체를 더럽히는 일을 하게 된다.
②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한다.
권위와 영광은 참 교회와 교회의 참된 지도자들의 권위와 영광과 바른 교리(성경의 바른 해석)의 권위와 영광을 가리킨다. 꿈꾸는 거짓 선지자들은 이것들을 훼방하고 자기 자랑만 하고 진리도 아니고 진실하지 못한 그들의 사상과 교훈만 주장한다. 그들은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며 말씀을 가지고 일하는 하나님의 참된 종들과 그 직분에 따르는 권위를 멸시하고 업신여긴다. 고린도후서 3:7-9에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라고 했다.
복음의 직분에 따르는 권위와 영광을 하나님께서 주셨으나 거짓 선지자들은 교회와 복음의 직분을 가진 선지자들을 훼방하고 권위를 업신여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침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 1:9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엄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천사장 미가엘 미가엘 천사는 택한 백성을 보호하는 임무를 띤 천사이다. 그러므로 마귀와 더불어 싸울 때는 미가엘 천사가 나타나곤 한다(단 10:13, 12:1, 계 12:7).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 시체를 우상화할까 봐 하나님께서 천사장 미가엘을 시켜서 모세의 시체를 치우도록 하였다. 그때에 마귀는 그 일을 방해하며 미가엘과 다툰 것이다.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를 치웠으므로 모세의 시체는 세상에 있지 않다(신 34:6). 또 한 가지 해석은 모세가 변화산에 나타난 것을 보아 모세를 그때에 부활시켰다고 한다. 그때 마귀가 모세의 죄를 들어 그의 부활을 방해하므로 하나님께서 미가엘 천사를 보내서 마귀를 물리치게 했다고 한다.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미가엘 천사가 마귀를 직접 판결하여 정죄할 수 있으나 그 권을 쓰지 않고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하고 주님의 권위를 높인 것이다. 주께서 꾸짖는 것이 참으로 두려운 일이요 무서운 것이다. 천사장일지라도 자기 위치를 지키고 하나님의 권위를 높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만을 내세우고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여 월권행위를 하지 않았다. 하물며 성도들이야 더욱더 하나님의 역사만을 내세워야 되지 않겠는가!
• 1: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천사장 미가엘도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는데 이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과 그 말씀을 훼방하다가 멸망당한다(벧후 2:12).
이성 없는 짐승 같이 권능으로 아는 그것 사람 가운데 본능만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이성을 따라 사는 사람도 있으나, 겸손하여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영으로 사는 사람이 신앙적인 사람이요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이다. 거짓 선지자들과 이단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와 영광을 훼방하나 사실은 그들이 알지 못하여 훼방하는 것이다. 그들은 짐승과 같이 오관(五官)으로 느껴지는 본능을 따라 행하며 자기 자랑, 자기중심, 자기만 위하는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은 생활을 한다.
이성은 모든 것의 가치를 인식하고 사고하고 판단하며 바로 처리하는 기관이다. 이성에는 마음(心)도 포함되는 데 중생한 영혼이 사용할 때는 선한 기관이 된다.
• 1: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거짓 스승들의 대표적인 인물 세 사람이 나타나 있다.
가인의 길 가인은 아담의 맏아들이고 농작물로 제사를 드렸다(창 4:3). 이 제사는 피 없는 제사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은 제사이며 영적인 제사가 아니고 의식적인 제사, 즉 죽은 제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죽은 제사를 받지 않았다. 가인은 자기 동생 아벨이 양의 피로 제사하는 것을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을 알고 그 동생을 시기하여 죽인 최초의 살인자였다. 오늘날에도 하나님 말씀에서 떠나고, 의식적으로만 하나님께 제사하면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성도가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한다. 말씀을 떠나 의식적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참 성도들을 오히려 핍박하고 죽이는 일까지 한다.
발람의 어그러진 길 발람은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옳지 않는 길을 걸어갔다(민 22:21-30). 모압왕이 발람에게 많은 예물을 보내며 모압에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존귀케 해주고 무엇이나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때에 발람이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시므로 가지 않았다. 모압 왕이 재차 요청하자 그것이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거절하지 못하고 욕심에 끌려서 가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다시 기도해 보았다. 그때에 하나님이 가라고 하였으며 발람은 욕심에 끌려서 불의한 삯을 위하여 어그러진 길을 간 것이다. 발람처럼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가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하는 기도가 발람의 기도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서 찾고 기도로 그것을 행할 힘을 구해야 한다. 또한 말씀에 옳지 않고 양심에 가책이 되면 그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욕심에 끌려서 물질을 따라 어그러진 길로 가는 것은 다 발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고 물질과 명예 영광을 위해서 나아가는 길이 발람의 길이다. 발람이 모압 나라에 가서 바로 말한다고 했으나 결국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많은 손해를 주었고 그 죄로 발람 자신도 멸망하였다(민 22:5 이하 참조).
고라의 패역 고라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으로서 당을 지어 하나님의 종 모세의 권위를 업신여기고 거역하다가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땅에 삼킨 바 되었다(민 16:30). 고라가 교만하여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권위에 도전하다가 멸망한 것이다. 모세에게 주신 직분과 고라에게 주신 직분이 다르고, 모세에게 주신 권위와 고라에게 주신 권위가 다르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와 위치와 질서를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무시하는 죄이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 1:12 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 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애찬의 암초 “애찬”은 성도 간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교제를 나누는 식탁이다. 여기에 암초가 있다는 것이다. 암초는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인데 이것에 배가 부딪히면 파선하게 된다. 거짓 선지자나 이단자들은 암초와 같이 주의 몸 된 교회 안에 숨어 들어와서 성도의 신앙을 파괴시키려고 한다. 그들은 암초와 같이 외부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똑같은 성경과 찬송을 사용하며 모든 의식에는 차이가 없으나 그 내용이 다르다.
가론 유다는 외부적으로는 예수의 충실한 제자였으며 회계의 일까지 맡아보았었다. 그러나 그는 사단의 사주(使嗾)를 받고 그의 종노릇 하였다. 이와 같이 겉으로는 바른 교역자 같고 바른 성도 같으나 이면에는 잘못된 교훈을 가지고 바른 교훈을 반대하고 파괴하는 자들이 있다.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는 자신만 위하고, 자기 몸만 기르고 양 떼를 돌보지 않고 오히려 강포로 다스리므로 양들이 짐승의 밥이 되고 유리방황하게 만든다. 에스겔 34:2-6에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짐승들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멧부리에 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라고 했다.
그러나 참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요 10:11).
바람에 불려 가는 물 없는 구름 물이 없는 구름은 사람의 애만 태우고 속이기만 한다. 가물에 농부들이 구름이 몰려오면 기뻐하며 비를 기다린다. 그런데 그 구름이 물 없는 구름인 경우에 사람들에게 더 큰 실망을 준다. 차라리 구름이 몰려오지 않았다면 밤에 이슬이라도 내릴 터인데 구름이 덮여 이슬마저 내리지 않으므로 곡식에도 막심한 손해를 준다. 참된 선지자는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과 은사를 받아 성도에게 나누어주는데 거짓 선지자들은 양 떼를 먹이지 않고서 주리게 만들고 실망시킨다. 그들은 또 바람에 불려 가는 구름처럼 정처 없이 자기의 유익을 따라 밀려다닌다.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거짓 선지자들은 소망이 없는 자이다. 가을 나무는 열매 맺힐 소망이 없고, “죽고 또 죽어”는 아주 죽어서 살 소망이 전연 없다는 것이다. 다음 해 봄이 와도 아무 소망이 없다. 이와 같이 거짓 선지자와 이단은 영적 생명의 역사가 끊어졌으므로 그 자체가 죽은 것이요(약 2:17), “뿌리까지 뽑혔으니” 희망이 전혀 없다. 뿌리는 기본 진리인데 그것을 버렸으니 이러한 사람은 다시 회개하여 새롭게 할 수 없다(히 6:4-8 참조).
• 1:13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바다의 거친 물결이 한번 일어날 때는 굉장하게 거품을 뿜어대지만 순식간에 그 거품이 사라지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이와 같이 거짓 선지자들은 말과 행동이 요란하고 굉장해 보이지만 실제 내용과 영적 생명력이 없고 거품처럼 허풍만 떨고 수치만 드러낸다. 그러한 자는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서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다. 거품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번갈아 일어났다가 사라지듯이 거짓 선지자들도 말과 행동에 있어서 일치하지 않고, 변태적이며 일관성이 없다. 또한 그들은 “바다의 거친 물결”처럼 격동시키고 싸우고 다투고 거칠게 행동한다. 그러나 참 신앙은 잔잔하고 고요하며(사 18:4, 30:15) 은밀하다(마 6:6).
영원히 예비 된 캄캄한 흑암은 마귀를 가두어 놓은 흑암, 영적 흑암을 가리킨다(6절). 이것이 지옥의 흑암과 연결되어 있다.
유리하는 별 궤도가 없이 돌아다니는 떠돌이 별이다. 별은 교역자나 지혜 있는 자를 지칭한다(단 12:3). 별은 위치와 궤도가 있다. 그러나 떠돌이 별은 일정한 위치와 궤도가 없이 떠돌아다닌다. 그와 같이 거짓 선지자들은 진리에 서 있지 않으므로 그 교훈과 행동이 일정하지 않고 유리한다. 자기 위치도 없고, 본분도 모르고, 자기의 길을 알지 못하여 정처 없이 흑암 속에서 떠돌아다닌다. 그들은 현재에도 영적 흑암 가운데 유리하고 있으며, 장차 영원한 흑암에 들어가서 멸망할 자이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빛 가운데 걸어가며 진리의 말씀대로만 걸어간다.
• 1:14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에녹이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을 예언했다.
아담의 칠세 손 에녹 에녹은 아담으로부터 622년 만에 아담의 칠세 손으로 출생하여 65세 때부터 삼백 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승천했다. 그가 승천하기 전에 주의 재림과 심판에 대하여 예언하였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 성도들도 에녹의 예언을 통해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을 알고 있었다.
주께서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수만의 성도들을 데리고 세상에 재림하실 것을 가리킨다. “임하셨나니” 그것이 미래의 일일지라도 확실한 사건이기 때문에 과거사로 기록한 것이다. 에녹의 예언을 본서 저자인 유다가 어떻게 알고 기록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그중 대표적인 것은 ① 가경(假經) 에녹서 1:9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에녹서 1:9는 본서와 같지 않은 점이 많이 있다. 각 구전으로 내려오던 에녹의 예언을 성령의 감동으로 유다가 기록했다는 설이 있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가경의 내용을 유다가 인용하여 기록했을 리가 없고 구전으로 내려오던 에녹의 예언을 유다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다는 설이 옳은 줄 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에 가 있던 모든 성도들을 데리고 천사들의 옹위 속에서 오신다.
• 1:15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재림시에 뭇사람을 전부 심판하신다. ① 뭇사람의 경건치 않은 행동을 심판하고, ② 경건치 않은 일을 심판하고, ③ 경건치 않은 말을 심판한다고 했다.
경건치 않게 행한 경건치 않은 행동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경건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세속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 앞에 바로 사는 생활이다. 이 경건에서 떠난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한다.
경건치 않은 일 경건치 않은 모든 사업도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된다. 성도는 무슨 일을 하나 신앙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해야 한다.
죄인이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에 대하여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말은 마음과 생각의 표현이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과 생각까지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12:36-37에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라고 했다. 하나님과 교회와 참된 교역자와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대하여 원망하며 함부로 한 모든 말은 반드시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동과 일과 말에 대하여 항상 하나님께 바로 하도록 힘쓰며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경건한 생활을 해야 된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통하여 심판, 재림, 승천을 예언한 것은 구약 성도들이 믿을 수 있도록 나타내 보여 주신 것이다.
• 1:16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원망하는 자며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멸망당하였다. 사람이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많기 때문이며, 원망하는 자는 믿음에서 떠난 자이다. 우리는 어떤 어려운 일에 당면해도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잔인 줄 알고 달게 받아야 한다(요 18:11).
불만을 토하는 자며 불만은 높은 마음을 품기 때문에 나온다. 불만을 잘 토하는 자는 천국에 간다고 해도 불만을 토할 수밖에 없다. 천국에 무슨 불만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같이 되지 못해서 불만을 토할 것이다. 마귀가 천사장으로 있을 때에 불만을 품고 교만하여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다가 쫓겨났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마음을 낮추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고(딤전 6:6-8) 항상 감사해야 한다.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정과 욕은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길로 나아가게 만든다. 성도는 마땅히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한다(갈 5:24).
자랑하는 말을 내며 자랑은 세상에 속한 것이다(요일 2:16 참조). 세상의 것으로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은 증거이다. 또 자기 자랑은 교만이다. 바울은 약한 것을 자랑했다(고후 12:5)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과도히 칭찬하는 것은 외식이요 악한 일이며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행동이다. 본 절에서 다섯 가지를 지적했다. ① 원망하는 자 ② 불만을 토하는 자 ③ 정욕대로 행하는 자 ④ 자랑의 말을 하는 자 ⑤ 이(利)를 위해 아첨하는 자이다. 이러한 자는 거짓 선지자와 이단들이다. 교리적으로 이단이 아닐지라도 이러한 길로 나아가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요한삼서 신약 히브리어 성경] 디오드레베와 데메드리오의 신앙(요삼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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