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9장에서는 인생의 짧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시간은 너무나 빠르다. 잠깐의 세월을 살게 된다. 이렇게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내세를 준비해야 한다. 천국의 삶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죽을 때 두려움이 있다. 구원받지 못했기에 항상 불안하다. 죽음이 공포로 다가올 수 있다.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아야 한다. 성도는 죽음을 준비하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인생의 짧음과 헛됨에 대한 탄식(욥 9:25-35)
성 경: [욥9:25] 비야마이 칼루 미니 라츠 바리후 로 라우 토바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생명이 짧음에 대한 탄식]
체부 - `시종'(侍從)으로도 번역된다(Pope). 이는 중요한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조정에서 고용한 발이 빠른 자를 가리킨다(대하 30:6; 에 3:13; 8:10, 14). 고대 팔레스틴, 특히 애굽 지역에서는 이러한 전령자들을 많이 사용하여 군사적, 행정적 사무를 원활히 처리하였다.
성 경: [욥9:26] 할리푸 임 아니요트 에베 키네셰르 야투스 알레 오켈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생명이 짧음에 대한 탄식]
빠른 배 - 원문의 문자적 의미는 `갈대의 배'이다. 고대인들은 큰 갈대를 이용하여 배를 만들었다. 이 배들은 넓이는 좁고 길이가 긴 유선형이었기 때문에 매우 빠른 속도로 항해할 수 있었다.
움킬 것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 - 일반적으로 독수리는 창공을 배회하다가 먹이를 발견하면 전속력으로 하강하여 그것을 채어간다. 이러한 독수리의 하강 모습을 통하여 아무런 소망 없이 허무하게 흘러가는 자신의 삶을 한탄하고 있다. 한편 욥은 육지(`체부', 25절). 바다(`빠른 배'), 공중(`독수리')등에서 빠르다고 생각되는 것을 일일이 열거함으로써 보잘것없고 짧은 자신의 삶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본문에서 욥은 단순히 세월의 빠름을 나타내려 하기 보다는 자신의 고통이 멈출 날을 기대하면서 병고 가운데 보내는 참혹한 시일들이 빨리 흘러가기를 소망하고 있다(34절).
성 경: [욥9:27] 임 아미리 에쉬키하 시히 에에지바 파나이 비아빌리가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인간 수고의 헛됨에 대한 고백]
본절에는 극심한 고통 중에 종잡을 수 없이 휘청거렸던 심령을 바로잡으려는 욥의 굳은 결심이 엿보인다(Hartley).
내 원통함을 잊고 - 이는 특히 자신의 처지를 동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정죄하는 태도를 보였던 친구들을 염두에 둔 말이다. 욥이 하나님께 불만을 토로하였던 것도 친구들의 비난과 조롱 탓이 컸다.
성 경: [욥9:28] 야고리티 콜 아치보타이 야다이티 키 로 티나케니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인간 수고의 헛됨에 대한 고백]
전절(27절)에서 보여주었던 욥의 굳은 결의도 극도의 고통 앞에서는 여지없이 해체되고 말았다.
성 경: [욥9:29] 아노키 에리샤 라마 제 헤벨 이가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인간 수고의 헛됨에 대한 고백]
어찌 헛되이 수고하리이까 - 이 말은 다음 두 가지 뜻을 모두 내포한다. (1) `하나님이 내리시기로 작정하신 고통을 피하려고 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Hartley) 이는 곧, 고통의 엄연한 현존 앞에서 깊이 절망해하는 탄식이다. (2) `하나님이 유죄로 판결하신 마당에 어찌 자신의 결백을 내세울 수 있겠는가'(Pope). 한편 `수고하리이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가'는 본래 `기진맥진하다'라는 뜻으로서 고된 노역으로 말미암은 쇠약함에 강조점을 두고 말이다.
성 경: [욥9:30] 임 히트라하치티 비모 샬레그 바하지코티 비보르 카파이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인간 수고의 헛됨에 대한 고백]
내가 눈 녹은 물로...깨끗이 할지라도 - 여기서 욥은 자신을 정화(淨化)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시 26:6에서 시인은 성소 제단에서 손을 씻음으로써 자신의 무죄성을 입증하려 했다. 신 21;1-9에는 피살된 시체를 발견할 경우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음으로써 그 살해 사건과 무관함을 나타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렘 2:22에서 하나님은 `잿물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유대 백성의 죄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본문에서 욥은 한편으로 자신의 무죄성을 주장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결국 흠많은 존재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한계 상황을 말하고 있다 하겠다.
성 경: [욥9:31] 아즈 바샤하트 티티빌레니 비티아부니 살리모타이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인간 수고의 헛됨에 대한 고백]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 - 구약 성경에서 종종 의복은 어떤 사람의 도덕적, 영적 특질과 결부되어 언급된다(8:22; 사 52;1; 61:10). 죄악에 대한 징계로 말미암아 황폐화된 예루살렘도 더러워진 치마를 입은 여인에 비유한 바 있다.
성 경: [욥9:32] 키 로 이쉬 카모니 에에네누 나보 야히다브 바미쉬파트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하나님의 절대성에 대한 인정]
앞의 두 구절에서 욥은 자신의 무죄성을 보이기 위한 최선의 방도를 강구하였거니와, 이제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토로하고 있다.
성 경: [욥9:33] 로 예쉬 베네누 모키아흐 야셰트 야도 알 쉬네누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하나님의 절대성에 대한 인정]
판결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모키아흐'는 `야카흐'에서 유래된 말이다(Norman C. Habel). 이 단어는 여러 문맥에서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었다. 지혜 문학에서는 `바로잡다', `경책하다'는 뜻으로 쓰였고(5:17; 잠 9:8) 법정적인 문맥이나 제삼자의 역할을 언급하는 문맥에서는 `판단하다' 혹은 `변론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창 31:37; 사 2:4). 여기서는 양자(兩者) 사이에 가로 놓인 벽이나 문제 등을 해소하는 중재자들을 의미한다. 욥은 지식, 능력, 거룩성 등에 있어서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놓인 엄청난 간격을 통절히 인식하고서 그 간격을 연결시켜 줄 대상을 마지막 희망으로 찾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렴풋하게나마 중보 사상을 보여주는 말이라 하겠다(딤전 2:5). 한편 욥기서 중 신약 성경에 그대로 인용된 부분은 단 한 곳뿐이지만(5:13; 고전 3:19) 그 내용상 신약 성경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절들이 더러 있다. 이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
| 내 용 | 욥 기 | 신 약 |
+-------------------------+--------------+----------------------
| 사단의활동 | 1 : 7 | 벧전 5 : 8; 계 12 : 9, 10 |
| 공수래 공수거의 인생 | 1 : 21 | 딤전 6 : 7 |
| 인간 지혜의 한계 | 5 : 12, 13 | 고전 3 : 19 |
| 경책에 대한 자세 | 5 : 17 | 히 12 : 5 |
| 중재자 | 9 : 33 | 딤전 2 : 5 |
| 부활에 관하여 | 14 : 14 | 요 11 : 25 |
| 하늘에 계시는 증인 | 16 : 19 | 히 9 : 24 |
| 살아계신 구속자 | 19 : 25 | 히 7 : 25 |
| 부활의 몸 | 19 : 26, 27 | 빌 3 : 20, 21; 요일 3 : 2 |
| 이기주의 | 22 : 6, 7 | 마 25 : 42-45 |
| 헛된 이득 | 27 : 8 | 마 16 : 26 |
+-------------------------+--------------+----------------------
성 경: [욥9:34] 야세르 메알라이 쉬비토 비에마토 알 티바아타니
성 경: [욥9:35] 아다비라 비로 이라에누 키 로 켄 아노키 임마디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하나님의 절대성에 대한 인정]
욥은 현재 자신의 판단력과 삶의 의지마저 흐리게 만드는 지독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러한 고통 속에 있는 한 객관적 입장에서 스스로를 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막대기(쉬베토) - 이는 양 떼를 인도하고 보호하기 위해 목자들이 들고 다녔던 지팡이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주는 안위감에 대해 노래하고 있으나(시 23:4), 이 지팡이가 징벌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21:9;사 10:5; 애 3:1).
[신명기 32장 주석강해설교] 모세의 교훈적 노래(신 3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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