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1장에서 베드로 사도는 구원받은 백성은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할 것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거룩한 생활을 함으로 주님을 맞이하기 위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된 것입니다. 나의 행위로 거룩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공로로 내가 의롭게 되어 구원받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오직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예수(벧전 1:13-25)
•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는 마음을 잘 다스리고 단속하라는 말이다. 마음을 잘 단속하지 않으면 마음을 세상에 빼앗기고, 마귀에게 빼앗겨서 믿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또 그러한 사람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도 마귀의 일을 해주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며,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는 일이 되지 않는다.
성도가 마음을 단속하지 않으면 속에 있는 부패성이 거침없이 나와서 자신과 남에게 해독을 끼치게 된다. 잠언 4:23에 “무릇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라고 했고, 잠언 16:32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근신하여 근신은 방종, 방탕과 반대되는 말로 삼가 조심하는 생활이요, 자기를 이기는 생활이다. 구원 얻은 자가 근신하지 않으면 신령한 것을 다 잃어버리고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게 된다. 우리가 근신하지 않으면 죄가 들어온다.
성도가 삼가 조심하여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구원을 잘 이루어 나아갈 수 있다. 요셉은 근신하여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며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미혹에 들지 않고 하나님 앞에 귀하게 사용되었다. 삼손은 용사였으나 근신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귀에게 속아 눈을 뽑히고, 원수에게 조롱당하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마음을 잘 다스리고 근신하는 자가 되어야겠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바라보고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때에 가져올 은혜를 바라보지 않는 자는 현실주의와 세속주의에 빠져서 자유 방종하기 쉽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에 대한 큰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자는 날마다 자기를 다스리고 지킬 뿐 아니라, 신부가 신랑 맞을 준비를 하듯 늘 경성하여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하게 되며, 주님 앞에서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늘 근신하고 깨어서 신앙의 정조를 잘 지키며 신랑 되는 예수님 오시기를 날마다 기다리는 생활을 하여야 할 것이다.
• 1: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알지 못할 때는 성도가 믿지 않을 때이다. 그때는 하나님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고, 육신의 욕심대로만 살았다.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욕심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이다. “사욕"의 헬라어 ʾεπι θυμὶ α(에피뒤미아)는 죄의 깊은 욕망을 가리키는데 전적 부패한 옛사람의 근본적 욕망을 가리킨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에는 욕심이 이끄는 대로 끌려 다니면서 죄의 종노릇을 하였고, 그 결과는 사망이었다(약 1:15). 믿는 성도가 욕심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과 그 말씀을 순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육체의 정욕은 성령을 거스려 행하기 때문이다(갈 5:17). 그러므로 성도는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야 한다.
•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우리를 불러 믿게 한 하나님이 거룩하니 성도는 그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가야 한다.
거룩은 죄에서 멀리 떠나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다. 거룩한 자가 되려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말씀을 순종하며 하나님을 닮아 나아가야 한다.
• 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이것은 레위기 11:44, 19:2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가 거룩해야 된다는 것이다. 성도에게 죄와 더러운 것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지 못한다. 성도가 거룩해야만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 사귈 수 있고,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있으며 (고전 3:16),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 거룩의 헬라어 ἅϒιος(하기오스)는 구별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구별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구별은 두 가지로 갈라놓는 것이다.
진리인가 비진리인가, 또는 인본주의인가 신본주의인가, 또는 마귀의 역사인가 하나님의 역사인가, 두 가지로 갈라놓고, 옳지 않은 것은 버리고 옳은 것을 따라가야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다.
•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며, 행위대로 판단하신다. 사무엘상 16:7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라고 했다.
외모를 보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신체나 용모나 학벌이나 직분이나 인간의 지혜 등을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보지 않으시고 그 사람의 중심과 행위를 보시고 판단하신다. 다윗의 외모는 보잘것없었으나 그의 중심과 행위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고 정직하게 행하여 하나님께 합한 자였기 때문에 (왕상 14:8, 행 13:22)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 많은 복을 주었다.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우리 성도가 세상에서 사는 생활은 나그네와 같은 생활이다. 나그네는 잠깐 후에 본향으로 돌아간다. 이와 같이 성도는 이 세상에서 잠깐 살다가 본향인 하늘나라로 돌아가 거기서 영원히 살 것이다. 성도가 본향인 천국에 돌아가면 세상에서 행한 행위대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 세상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성도는 세상에서 잠시 고난을 받더라도 본향에 돌아가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의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한 것이니라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 인류의 시조 아담 때부터 유전해 내려온 부패성과 모든 욕심에서 나오는 모든 더러운 행위이다. 아담의 후손은 누구나 다 부패한 성품과 죄가 있으나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희생한 그 피로 성도를 구원해 주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을 얻은 자이니 우리의 구원이 참으로 귀한 것을 깨달아 경히 여기지 말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한다.
• 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 그리스도의 구속은 창세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다(엡 1:4 참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예정을 따라 말세에 성도를 위해서 나타내신 바 되었다 여기 말세는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를 가리킨다(히 9:26 참조). 본절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내신 바 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탄생하여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구속해 주신 것을 가리킨다.
• 1:21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성도는 하나님을 믿는 자요,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는 자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내시고 영광을 주신 분이시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죽기까지 복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한 바 되었는데 하나님 아버지는 능력으로 다시 살리셔서 영광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면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려서 영광을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으며, 이 소망은 견고하고 든든하다. 성도는 이 믿음을 가지고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며 죄와 더불어 싸워 나가는 자가 되어야겠다.
•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여기 영혼은 헬라어 ψυχή(프쉬케)로서 혼이라는 뜻이 있는데, 중생한 영이 사용하는 혼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중생한 영의 역사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이것은 중생하여 이미 깨끗해진 영혼이 진리를 순종해 나아갈 때에 점점 더 깨끗하게 되어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곧 깨끗에서 깨끗으로, 거룩에서 거룩으로 점점 자라나는 것을 말한다.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에 말씀과 성령으로 중생한 영의 본질도 사랑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중생한 영으로 살면 사랑의 세계에서 살게 되고, 사랑의 사람이 된다. 또 그 사람은 자기 심령 속에서 진정한 사랑이 쏟아져 나온다. 사랑의 세계와 영의 세계와 성령의 세계는 동일하며 빛의 세계와 진리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도 모두 같은 하나의 세계이다.
모든 성도가 중생할 때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중생했고,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았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으로 사는 사람은 그 속에서 사랑이 자동적으로 나오게 되며 형제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게 된다. 성도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중생한 영으로 살지 않고 육신으로 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도 영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자요, 흑암에 있는 자이다.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성도가 적극적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기를 힘쓰면 더욱 많은 사랑을 베풀게 되고, 자신의 인격이 더욱 사랑의 사람으로 만들어진다.
•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중생의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약 1:18). 중생은 죽었던 영이 살아난 것인데, 성화와는 다른 것이다. 중생은 단번에 순간적으로 되는 것이요, 성화는 일생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 믿기 전에는 사람의 영이 다 죽은 영이다. 그 죽은 영이 성령과 말씀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 중생이요, 이것은 영적 사망에서 영적 생명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은 새 생명을 받은 것이요, 새 생명의 시작으로 하나님에 의하여 찰나적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중생은 물과 성령으로 이루어진다(요 3:5). 물은 말씀을 가리킨다(엡 5:26, 약 1:18, 고전 4:15 참조). 말씀의 씨 (눅 8:11)가 아니면 새 생명이 살아날 수가 없다. 본절에도 성도를 중생시킨 말씀은 항상 살아 있는 말씀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혼은 다시 죽지 않는다. 항상 살아 있는 말씀의 씨로 중생한 영혼이 어떻게 죽겠는가! 알미니안주의나 가톨릭이나 루터파까지도 중생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생한 사람은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는다. 중생한 사람은 타락해도 지옥에는 가지 않는다. 만일 지옥에 간다고 하면 중생한 영혼이 다시 죽게 되고 그리스도의 구원은 불완전한 것이 되고 만다.
성도가 실제 생활에서 죄를 범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옛사람과 새 사람이 있다(엡 4:23-24). 중생한 영은 새 사람으로서 죄를 짓지 않고, 항상 의를 행하려고 하며 하나님만 즐거워한다. 그러나 옛사람(육신의 부패성, 욕심)은 죄를 좋아하고 마귀와 짝하여 죄의 길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속에서 옛사람과 새 사람이 싸운다(롬 7:14-25).
성도가 중생한 새 사람을 따라 살면 의를 행 하나 옛사람을 따라 살면 죄를 범하게 된다. 이것은 중생한 영이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며 성도가 옛사람(육신의 부패성)을 따라 살므로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성도가 범죄 할 때에도 중생한 영은 언제나 반대한다. 중생한 영은 성도가 죄를 지으려고 할 때에도 반대하고, 죄를 범할 때에도 반대하며, 죄를 범한 후에도 양심에 가책을 주어 회개하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중생한 산 영은 죄를 범하지 않는다. 요한일서 3:9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라고 하였다. 또 중생한 영에는 성령이 내주 해 계시는데 어떻게 죄를 짓겠는가! 그러므로 중생한 새 생명은 범죄 하지 않는다.
• 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이사야 40:6 이하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풀"은 잠시 있다 없어지는 것이고, 또 연약한 것이다. 이와 같이 육신을 가진 모든 인생은 잠시 있다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시편 90:10에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했다.
또 인간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이 잠깐 있다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花無十日紅(화무십일흥)이요, 勢無十年過(세무십년과) 라는 말이 있다. 돈을 많이 모아서 부자가 되고, 공부를 많이 하여 유명한 박사 학위를 받고, 또 큰 권세를 얻었다 해도 그 영광이 잠시 잠깐 후에 시들어 없어진다. 인간은 실로 빈손 들고 왔다가 빈손 들고 가는 것이다.
• 1: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주의 말씀은 생명이요, 영원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에 주의 말씀을 받아 믿고 순종하면 세세토록 그것이 남아 있다.
인간은 약하고 잠시 잠깐 후에 쓰러질 허무한 존재이지만 세상 사는 동안에 주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대로 자기를 만들어 나아가면 영이 자라나고 인격이 만들어져서 하늘나라에 가서 그것이 세세토록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그네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배우고, 그 말씀대로 부지런히 자기 영혼을 길러 나가도록 힘써야겠다.
육체 예수를 믿어도 육신 중심으로 살고, 감정주의와 의식주의로 나아간 것은 다 없어진다. 아무리 교회 의식을 화려하게 거행하고,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지고 나아가도 영이 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의식과 형식적으로 종교 생활을 하고 감정주의로 즐거워하고 자기의 명예, 영광 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모두 육에 속한 것이다 이 세상도 가고, 정욕도 가고, 감정도 가고, 의식도 지나가나 말씀대로 만들어진 것만 영원히 남는다.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우리에게 전하여 믿게 한 복음은 육체를 따라 살지 말고 영으로 살며, 말씀대로 순종하여 영혼이 자라나며,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라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궁극적 권면이다.
[야고보서 신약 히브리어 성경말씀]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는다(약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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