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3장 강해 설교에서는 사무엘이 사울 왕을 폐위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사울 왕은 왕위에 오르고 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제 멋대로 행동했다. 왕이 번제를 드리지 말아야 하는데 사무엘이 오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번제를 드림으로 대제사장의 권한을 침해하였다.
사무엘이 사울 왕 폐위 선언(삼상 13:1-23)
요나단이 블레셋을 침(1-4)
• 13:1-4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새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년에 이스라엘 사람 삼천을 택하여 그중에서 이천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일천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사울의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가증히 여김이 되었다 함을 듣고 길갈로 모여 사울을 좇으니라
우리말 성경에는 사울이 왕이 될 때 사십 세라고 하였는데 히브리 원문, 성경에는 사십 세라는 말이 없다. 그런데 아들이 나라의 한 군인으로 활약할 만큼 장성한 것을 보아 사울의 연령이 사십 세는 되었을 것으로 본다. 교부 오리겐(Origson)의 헥사플라(Hexapla) 역에서는 삼십 세로 추측하여 번역하였다. 흠정역(KJV)에서는 “사울이 1년 동안 다스렸더라”고 번역하였다.
사울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년에 사울은 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그중에서 이 천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였고 일 천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였다. 암몬 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에 쳐들어 왔으므로 사울이 전국 백성을 모이게 하여 그 원수들을 물리친 후 사울이 이스라엘 상비군 삼천 명만 남겨 두고 그 나머지는 각기 장막(집)으로 돌려보냈다.
블레셋 수비대가 게바에 있었는데 이것을 요나단이 쳤다. 그러므로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쳐들어올 기운이 있는 것을 보고 사울이 나팔을 불어 전국에 있는 군대를 다 모이게 한 후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 수비대를 친 것과 그로 인하여 블레셋이 이스라엘에 곧 쳐들어오게 될 것이므로 싸울 준비를 해야겠다고 말하였다.
요나단이 블레셋 수비대를 친 것은 잘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인데 하나님 깨서 통치하는 나라 안에 이방 세력이 들어올 수 없다. 들어왔으면 쫓아내야 한다. 요나단은 믿음과 용기가 있고 의(義)를 귀혀 여기는 사람이므로 하나남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불붙듯 하여 블레셋 수비대를 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블레셋 군대가 또 많이 올라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블레셋 사람이 또 올라오면 하나님이 또 치게 하여 주실 것으로 요나단은 믿은 것이다.
요나단은 숫자가 많고 적은 것에 관계하지 않았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않음을 믿고 나아간 것이다(14:6).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위하여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해 주시므로 적이 아무리 많고 강하다고 하여도 걱정할 것이 없다고 확신하고 나아가는 요나단이다. 다윗이 믿음으로 나아가 골리앗 대장을 친 것과 같다(17:47). 아무리 원수가 강하고 숫자가 많아도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여 주시면 이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아갈 때 요나단과 같이 용감할 수 있다.
블레셋 사람이 쳐들어옴(5-7)
• 13:5-7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여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서 벧아웬 동편 믹마스에 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은 떨더라
블레셋 사람이 병거 삼만과 마병 육천, 그리고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은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왔다. 당시의 최신식 무기로 중무장하여 많은 군대가 쳐들어와서 벧아웬 동편 믹마스에 진을 친 것이다. 거기에 비해 이스라엘 군대는 아주 미약하다. 무기도 변변치 못했고 숫자도 적었다. 사울과 요나단밖에는 칼과 창을 가진 자가 없었다(22절).
블레셋 군은 무기가 많고 좋은데 비하여 이스라엘은 무기도 없으며, 블레셋 군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데 이스라엘은 소수였다. 어느 면으로나 이스라엘은 블레셋 군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미약하고 보잘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군대는 너무 두려워 바위틈에 숨어 벌벌 떨고 어떤 자는 요단 강을 건너가서 갓과 길르앗으로 도망치고 또 어떤 자는 수풀이나 웅덩이에 숨게 되었다.
사울의 범죄를 사무엘이 책망함(8-15上)
• 13:8-15上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 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사무엘이 사울에게 칠일 안에 오기로 약속하였으나 칠일이 되어도 사무엘은 오지 않고 상황은 심히 급박하여 당장에라도 적이 쳐들어올 형편이며 백성(군사)들은 무서워서 사울을 떠나 이리저리 도망하므로 사울이 급한 마음에 자기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제사를 막 드리고 나자 사무엘이 왔다. 이것을 보면 사울이 사무엘과 약속한 칠일이 다 지나도록 완전히 기다리지 못한 것이다.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모든 것이 제대로 되었을 터인데 참으로 유감스럽다. 우리가 참되 최후 순간까지 참아야 된다.
원수 블레셋 군대는 많고, 백성은 두려워서 다 흩어지고, 원수와 싸우러 나아가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나아가야 되겠는데 사무엘이 오지 않기 때문에 사울이 생각하다 못하여 자기가 사무엘 대신에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으려고 생각하였고 번제물을 가져다가 번제를 드렸다.
사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한 것은 좋은 것이지만 자기가 번제를 드린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레위 지파 중 제사장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는데(민3:5-10) 베냐민 지파인 사울이 제사장 노릇을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다.
목적이 좋다고 방법은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목적과 방법이 다 같이 바르게 되어야 한다.
사무엘이 사울왕에게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 사울이 제사를 드렸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돌려서 말하기를 “백성은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에 오지 않고 적은 믹마스에 모여 있고 블레셋 사람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는데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으므로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다”라고 하였다. 이 말속에는 사무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사울의 입장에서 보면 참다못하여 아주 위급한 상황에서 할 수 없이 이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형편이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나 지켜야 되고 사람의 형편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이 제약을 받을 수는 없다.
그래서 사무엘이 왕에게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다고 엄히 책망하며 왕이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왕권을 빼앗기게 되었다고 하였다. 제사를 드린 것 때문에 이렇게 왕권을 빼앗는 하나님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가며 제사를 드린 것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한 죄이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침범한 죄이며, 거룩한 한계를 범한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들여다보다가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도 거룩하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한계를 침범했기 때문이었다. 제사 자체는 선한 일이고 성경 말씀을 순종한 것이었지만 방편이 바르지 못하므로 하나님 앞에 벌 받는 죄가 되는 것이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출석해서 예배만 드리면 되는 것으로 알고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에 대하여서는 무관심한 사람이 많다. 이것은 사울이 제사를 드린 죄에 빠진 것과 같은 것이다. 예수를 믿되 어떻게 믿어야 바로 믿는 것인지, 또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 바로 깨달아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맞게 해야 된다.
올바른 제사, 복을 받는 제사를 드리려면 성경 말씀에서 제사드리는 방법을 찾아야 된다. 이 방법대로 하지 않고 그저 교회에만 왔다 갔다 하면서 예수 잘 믿는 것으로 아는 것이 오늘날 타락된(세속화된) 교회의 병폐이다. 교회에서는 성경을 바로 가르치고, 성도는 바로 배워서 어떻게 믿어야 바로 믿는 것인가, 어떻게 섬겨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가를 알아 성경대로 믿고 섬겨야 한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배우려고 힘써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경 말씀대로 바로 하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열심을 내고 돌아가는 것은 사울과 같은 식으로 제사하는 것이 되어 하나님 앞에 도리어 악이 된다. 웃시야왕도 제사장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하다가 문둥병에 걸렸다(대하26:19), 인간적인 면에는 좀 실수가 있더라도 종교면에 있어서는 잘못이 없어야 하나님께서 귀히 보신다. 반대로 인간적인 면에서는 아무 흠이 없더라도 종교적인 면(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잘못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 앞에서 잘못할까 보아 벌벌 떠는 자가 복을 받는다.
사울의 인격은 다윗의 인격보다 좋은 점이 많다. 다윗은 우리야 아내를 빼앗고 우리아를 전쟁에 내어보내 죽게 하였으므로 살인과 간음을 하였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한 아각왕을 살릴 만큼 인정이 많았고, 간음하지도 않았다. 인간면에 대하여는 사울이 마음이 넓고 인정이 많으나 종교면에 대하여는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으니 잘못한 것이다.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을 침범하고, 제사를 멸시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함으로 망하게 된 것이다.
다윗은 인간면은 부족한 것이 있지만 종교면에 대하여는 바로 순종하려고 애를 썼다. 때로는 실수하여 죄를 지었지만 죄를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벌벌 떨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제사장을 존중히 여기고 또한 제사를 존중히 여겼다. 번제를 사울보다 더 많이 드렸으나 자기가 제사한 것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제사장을 통하여 드렸다. 하나님의 제사에 대하여 벌벌 떨고, 존중히 여기고, 제사장(교역자)을 존중히 여길 줄 알아야 복을 받는다. 신약시대에 있어서 일반적 의미로는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의 위치에 있지만 하나님의 교회에서의 봉사적 직무의 제사장은 교역자이다.
구약시대에 제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줄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희생의 제물을 드릴 때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이 그리스도와 교통 하는 가운데 제사를 드려야 한다. 이러한 제사가 산 제사이다. 생명 있고 영이 사는 제사는 말씀에 맞게 드리는 제사이다.
사울은 왕이 된 지 불과 이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교만하여져서 월권 행동을 하고 하나님이 두려운 줄을 알지 못하고 은혜만 받을 욕심으로 자기가 소를 잡아 제사 드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고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였다. 참 제사는 영으로 하나님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그 속에 있어야 되는 것인데 이것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울은 하나님 앞에 영광을 얻지 못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부득이하여 그랬다고 변명해도 쓸데없다. 하나님 말씀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하지 않아야 되는 것이다.
오늘날 성도가 제사드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말씀에 맞는 제사를 드리려고 해야 한다. 예배를 바르게 드려야 생명이 있고, 하나님과 교통이 가능하고, 영적 생명이 장성하는 것이다. 예배시간을 존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예배 시간에 늦거나 빠지는 것은 제사를 경히 여기는 것이요 복 받지 못하는 행위이다. 누구든지 정성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 시간에 늦지 않고 빠지지 않는 사람은 소망이 있으나 반대로 진리를 버리고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고 세상 것(공부, 직장, 돈, 명예)을 크게 여겨 주일을 범하고 예배 시간에 늦고 빠진다면 복을 받을 수 없다.
성도는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고 하나님의 제사를 존중히 여겨 성경에 맞도록 하나님을 섬기고 제사를 드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왕권(복)을 빼앗기고 만다. 사울왕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다른 사람을 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을 삼겠다고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에게 말해 주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면 나라나 집안이나 오래가지 못하고 반드시 망할 날이 온다.
블레셋 군대와 서로 대진함(15下-23)
• 13:15下-23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을 계수하니 육백 명가량이라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그들과 함께 한 백성은 베냐민 게바에 있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진 쳤더니 노략꾼들이 삼대로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나와서 한 대는 오브라 길로 말미암아 수알 땅에 이르렀고 한 대는 벧호론 길로 향하였고 한 대는 광야를 향한 스보임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지경 길로 향하였더라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어졌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온 이스라엘 사람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버리려면 블레셋 사람에게로 내려갔었는데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으니라 블레셋 사람의 부대가 나와서 믹마스 어귀에 이르렀더라
사울과 함께 한 백성은 육백 명 가량이었다. 사울이 군사 이 천명을 데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육백 명밖에 남지 않았다. 원수가 너무 많고 강하니까 두려워서 숨고 달아나고 육백 명 가량만 남았다. 사울과 요나단에게만 칼과 창이 있었을 뿐이었고 나머지에게는 무기도 변변한 것이 없었다. 블레셋 부대는 믹마스에 진 쳐 있고 거기서 노략꾼 삼대가 나왔다.
무기도 없는 사울의 군대가 블레셋 군대를 맞아 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울의 군대에 무기가 없는 것은 전에 블레셋 사람이 쳐들어와서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려워하여 철공을 죽이고 포로로 잡아갔기 때문이다. 그리하며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어서 이스라엘 사람이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날카롭게 하려면) 블레셋 사람에게 내려가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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