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히브리어성경

[신약 히브리어 성경말씀 야고보서]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말라(약 1:1-8)

베들레헴 2021. 11. 2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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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에서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낸다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서는 구원받은 사람이 어떻게 성화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는 책입니다. 이것을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하면 성경을 잘못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미 구원받았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던 성도들에게 야고보 사도가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믿음이 있다면 행함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믿음으로 구했다면 의심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마음에 두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김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섬기면서 나가는 거룩한 성도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말라(약 1:1-8)

 

•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아니고 주의 동생 야고보로서(마 13:53-55) 자신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한 것은 그가 예수를 잘 믿고 언제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의 위치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 되었으며, 초대 교회의 기둥과 같이 되었다. 초대 교회의 기둥을 말할 때 야고보를 게바보다 먼저 말한 것도 그만큼 종의 심부름을 잘하였다는 증거이다(갈 2:9). 그러면 어떤 자가 종인가?

그 세 가지 특징은

① 자기 뜻대로 하지 아니하고 주인의 뜻대로만 하는 자이다. 곧 자기 뜻은 다 버리고 다만 하나님의 뜻대로만 행하는 자이다.

②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주인을 위해서 사는 자이다.

③ 모든 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지 않고 주인의 것으로 삼는 자이다. 자기의 몸까지도 주인의 것인 줄 알아야 한다.

성도는 종의 세 가지 특징을 바로 알고 언제나 종의 자리에서 주님을 섬겨야 한다.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이 야고보서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보낸 것이다. 이는 각처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 중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가리킨 것인데, 궁극적으로는 세계 각국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본서의 본론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말로 시작했다. 이는 성도가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 가지 많은 시험에 부딪힐 때 슬퍼하거나 낙망하지 말고 오히려 온전히 기뻐하라는 것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면으로 여러 종류의 시험을 당하게 된다. 가령 신체적으로 죽을병에 걸리든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 많은 시험이 오게 되고, 혹은 믿음을 지켜 나아가려면 가정이나 단체, 또는 국가적으로 많은 시험이 오게 된다. 그럴 때 잘 참고 승리적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와 반대로 낙망하는 사람도 있고, 시험이 너무 커서 견딜 수 없어 쓰러지는 사람도 생긴다. 예를 들면 생활이 곤란하므로 자녀들도 죽이고 자기도 죽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원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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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고 말씀하셨다. 병이 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든지, 병신이 되었든지, 죽게 될지라도 너희는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것이다.

왜 기쁘게 여겨야 하는가? 보통 사람은 시험이 있다가 끝나고 없어져야 비로소 "아! 참 기쁘다"라고 하는데 성경에는 시험이 없다가 생길 때 기뻐하라고 하였다. 기뻐하되 보통 기뻐하라는 것이 아니고 온전히 기뻐하라고 하였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 나와 있다.

• 1:3-4  이는 너회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시려고 은혜와 복으로 모든 시험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복이 아니면 우리에게 주시지 않는다. 시험은 우리의 신앙 인격을 만들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이 올 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쁘게 여겨야 된다.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실 때 성도를 망하게 하려고 주시는 것이 아니며, 또 하나님께서 성도를 저주하려고 주시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시험을 주신 것은 어떻게 하든지 나를 바로 만들고, 바로 세우려고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시는 근본 이유는 우리 성도를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4:5에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고 했다. 이는 성령께서 우리를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께만 향하게 하려고 하는 마음이 간절함을 뜻한다.

우리가 다 길 잃은 양과 같고 탕자와 같은 자이지만 독생자의 피를 흘려 우리를 값으로 사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놓으셨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쳐 드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므로 하나님은 너무 안타까워 탄식하시며, 시기하기까지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시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려고 시험을 주지 않을 수 없어 여러 가지 시험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를 바로 세우려고 시험을 주시는 것이므로 이것을 생각할 때,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고, 찬송하는 마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호수아 3장 오늘 말씀] 여호수아 군대가 요단강을 건넘(수 3:1-17)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믿음에는 시련이 있어야 되고, 시련에는 인내가 있어야 된다. 그렇게 하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된다. 시험이 들어을 때, 첫째는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되고, 둘째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서 하나님을 찾아야 되고, 셋째는 말씀에 바로 서서 그대로 걸어가야 되고, 넷째는 끝까지 참아야 된다.

시험은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으로 주시는 것인 줄 알고 기뻐하고, 그 사랑에 감사하여야 되고,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사모하고,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는 데까지 나아가야 된다. 시험이 올 때 사람의 모든 방책은 쓸데없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찾아다니며 물어보아도 소용이 없다. 다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가서 옛날의 제단을 다시 쌓아야 된다(창 35:1-5 참조).

여기 시련이란 몇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그 시련을 통하여 더러운 찌꺼기를 내어 버려야 된다는 것이다. 곧 쇠를 불에 녹여서 찌꺼기를 제거하는 것과 같이 쓰지 못할 것이 나에게 있는 것을 찾아서 제거함을 말한다. 둘째는 그 시련을 통하여 약한 데서 강하게 된다는 것이다. 약한 것을 불에 여러 번 넣으면 강하게 된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끊어 버리지 못하고, 옳은 줄 알면서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약하기 때문이다. 이런 약한 것을 강하게 만들어 나아가야 된다. 셋째는 그 시련을 통하여 쓸 만한 그룻을 만든다는 것이다. 곧 건설하는 면을 말한다. 이것이 좋은 사람이 되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연단을 받아 점점 온전한 인격이 되어 나아간다.

연단이 없는 성도는 숯덩이와 같아서 일을 당해 내지도 못하고 가치도 없다(히 5:13-14). 연단을 많이 받아야 찌꺼기가 제거되고 강하게 되고 바로 건설되어 장성한 신앙이 되어 나온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합당한 신자가 되는 것이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여러 가지 시험이 들어오는 것은 연단을 시키려 함이다. 이 연단을 받는 데는 반드시 인내가 필요하다. 참고 견디는 이것이 중요하다.

김 현봉 목사님은 어떤 사람이 "기독교의 가장 요긴한 점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참고 견디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셨다. "둘째는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 "둘째도 참고 견디는 것이다.“ "셋째는 무엇입니까?" "셋째도 참고 견디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참고 견디는 것이 없이는 도저히 신앙의 연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험이 들어오면 참고 견디어야 한다. 첫째도 참고, 둘째도 참고, 셋째도 참아야 한다.

참을 때 어떻게 참아야 하는가? 믿음으로 참고 나아가면 더 좋은 것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면서 참아야 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서 참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것을 회개하면서 참아야 하고, 말씀대로 걸어가면서 참아야 된다. 이렇게 열 번, 백 번, 천  번 계속하여 참고 나아가야 된다.

시험이 들어을 때는 고통이 따라온다. 그러나 그 고통을 참아야 한다. 참는 데서 구원이 이루어져 나아가는 것이다. 십자가 없는 세계를 구하지 말고 십자가가 있는 세계를 기뻐하여야 된다.

[신약히브리어로 보는 요한복음]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요 6:60-71)

바울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을 즐거워하였다. 골로새서 1:24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하였다. 사람이 고난을 당하지 않고 살려면 많은 사람을 상종하지 말고 혼자 사는 것이 좋으며, 집이 있는 사람보다 집이 없는 사람이 더 낫다. 그는 불이 나도 걱정이 없고, 홍수가 나도 걱정이 없다. 또 혼자 사는 것보다 죽은 사람이 고통이 없고, 죽은 사람보다 나지 않은 사람이 고통이 없다. 그러나 나지 않은 것은 가치가 없는 것이니 가치란 나지 않은 사람보다 나서 죽은 사람이 더 있고,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이 더 있고, 산 사람 중에서도 일하지 않는 사람보다 일하며 활동하는 사람이 더 있고, 그중에서도 큰 일을 맡아 고통을 받으면서 참고 나아가는 사람이 더 가치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순종하여 나아가며 참는 것은 더욱 가치가 있다.

성도가 주를 위하여 고난당하는 것은 은혜인 줄을 알아야 된다(빌 1:29).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시험으로 고통을 주시는 것은 복으로 주시는 것인 줄 알고 감사함으로 받아야 하며 오히려 시험 중에서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해야 된다. 가까이하지 않고는 살 수 없으며 가까이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짐을 다 져주신다. 시편 68:19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천하의 고통이 다 닥쳐와도 걱정되지 않고 도리어 시원하도록 하나님이 해 주신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실 때에 만대 만민의 죄악의 고통이 다 왔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겠는가? 그러나 예수께서 은밀한 가운데서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내려와서 그에게 힘을 주고 도와주었다(눅 22:41-44).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를 마주 보며 찬미하면서 나아가실 수 있었다(마 26:30).

하루에 안되면 이틀, 이틀에 안되면 열흘, 열흘에 안되면 한 달, 한 달에 안되면 일 년, 일 년에 안되면 십 년이라도 참고 나아가야 된다.

이기선 목사님은 일본 통치하에서 신사 참배 문제로 7년간 감옥에서 참고 견디었다. 7년 후에 하나님께서 일본을 망하게 하시고 감옥에서 나오게 하셨다. 고통스러운 생활 속에서도 진리의 말씀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잘 참고 나아갔다. 고통은 이 진리의 말씀의 길을 걷지 못하게 하려고 오는 것이므로 절대 양보하지 말고 자기 신앙 양심에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붙들고 나아가야 산다. 양보하면 죽는다. 매를 맞아도, 굶어도, 내어 쫓겨도 끝까지 참고 나아가면 강하여진다. 거스리는 강력한 세력을 참고 이겨 나아가면 그보다 더욱 강하여진다. 일본 군국주의의 강한 탄압 세력에서 끝까지 참고 믿음을 지켜 나아가므로 일본의 세력보다 강하여졌고, 바벨론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말씀 하나를 붙들교 그 시험을 참고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그 강한 세력을 이기게 하여 주셨다. 그러므로 신앙에서 인내를 떼어낼 수 없다. 말씀을 붙들고 참고 나가면 약한 것이 강해지고, 미련한 것이 지혜로와져서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는 사람, 곧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이루어져 나아가게 된다.

• 1:5  너희 중엔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지혜는 시험을 이기는 지혜를 가리킨다. 이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여야 된다. 시험을 이길 만한 능력인 있다고 하여도 지혜가 없으면 실패한다. 그러므로 시험과 싸워서 이기기 전에 먼저 하여야 할 것은 지혜를 구하는 일이다. 이 지혜가 없이는 자기가 잘할 것 같아도 하나님께 바로 하지 못하게 되면 실패할 뿐이다. 아무리 힘이 강해도 그 힘을 바로 사용하지 못하면 실패한다. 마귀가 예수께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하였을 때 예수님은 돌로 떡이 되게 하실 능력이 있었고, 또 마귀와 싸워 이길 능력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다.

[에스겔 1장 설교 말씀] 에스겔이 본 네 생물 환상(겔 1:1-14)

또 두 번째는 마귀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그러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여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신다는 성경말씀(시 91:11-12)을 가지고 예수를 시험하였다(마 4:6). 이 성구는 그렇게 사용할 말씀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를 짓도록 하는 것으로서 성경을 오용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성도가 믿음의 길로 걸어가다가 위험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시어 붙들어 주신다는 뜻인데, 마귀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성경대로 되나 안 되나 시험해 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마귀가 성경을 가지고 나을 때 자칫하면 마귀에게 넘어가기 쉽다. 성경을 가지고 말해도 그 성경의 본 뜻을 바로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시험이 들어을 때에 마음이 뒤숭숭하여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방황하게 된다. 그럴 때는 성경을 상고하고 깊이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된다. 하나님의 뜻을 찾되 정확히 찾아 붙들어야 된다.

예수님은 세 가지 시험을 이기기 위하여 40일간 금식기도 하셨다. 진리 하나를 바로 붙들면 그것이 성공이다. 바로 붙든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영적인 세계에 깊이 들어가야만 된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연구해도 안된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그 진리를 붙들어야 된다.

일반적으로 시험이 들어을 때 마음이 복잡하고, 뒤숭숭하고, 평안치 않다. 그럴 때 덮어놓고 이기게 해 달라고 하지 않고 기도를 깊이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하루, 이틀, 여러 날 동안 기도하면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지고 마침내 "이것이다" 하고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신다. 바로 이것을 붙들어야만 된다. 붙들기만 하면 용기가 나고, 자신이 생기고,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신다. 이것이 곧 성공이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느냐고 하실 때에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 재판할 지혜를 간구했다.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어주시어 많고 어려운 재판을 공평하게 할 수가 있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는 영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아무리 육적인 지혜가 있어도 소용이 없으며 다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라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기도하기를 기다리시며 성도의 부르짖는 음성을 듣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계속해서 부르짖으면 세상과 자기는 점점 없어지고 주님의 뜻만 나타나서 우리로 그 뜻을 알게 하신다. 또 구하면 주시돼 넉넉하게 주신다.

•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믿음으로 구하고라는 것은 첫째, 내가 만난 시험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이요, 또 나를 바로 세우시려고 주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 것이며, 은혜와 복으로 주신 것으로 믿고 구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죽을 것 같고, 소망이 없는 것 같고, 모든 일이 다 잘못된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만들기 위하여 주시는 시험인 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야 한다.

둘째, 반드시 감당할 시험만 주시는 것을 믿고 구하라는 것이다(고전 10:13).

셋째, 반드시 피할 길을 주실 줄 믿고 구하라는 것이다.

넷째,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받고자 하는 각오를 갖고 구하라는 것이다. 무엇을 주시든지 단 마음으로 받겠다는 결심으로 기도하여야 된다. 좋은 것만, 큰 것만 구하지 말고 작은 것을 주셔도 고맙게 받으며, 비천한데 처하게 하셔도 달게 받아야 된다. 예를 들어 자기 아이가 병이 들었으면 살려 달라고만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를 바로 세우려고 하시는 것인 줄 믿어야 하며, 또 아이의 병을 고쳐주지든지 데려가시든지 하나님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는 것이 믿음의 기도이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당면하여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이 믿음으로 하는 기도이다. 신자들이 기도할 때 대개는 복을 내려 달라고 기도하면서 “축복하여 주옵소서"하고 큰 것, 좋은 것 만을 구한다. 이것이 미신적인 신앙이다. 기독신문에 의하면 어떤 선교사가 "한국의 기독교는 샤머니즘(Shamanism)이 되어간다"라고 평하였는데 이것은 무당에게 복 받게 해 달라는 식의 기독교로 변하여 가는 경향을 말한다.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 "살려 주십시오.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만 받겠다고 기도하였다.

예수께서 한 면만 기도하시면 열두 영이 넘는 천사가 내려와서 예수님을 잡으러 오는 무리를 다 잡아 없이 할 수도 있었으나 성경을 응하게 하시려고 순종하여 잡혀가셨다.

다섯째, 아버지의 명령대로 걸어가겠다고 하는 기도이다.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쫓겨나거나, 죽게 되어도 인도하시는 그 길로 걸어가겠다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며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신다.

의심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첫째, 육신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을 가지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이것은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죽어도 좋다고 기도해 놓고,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 또는 아나니아 부부와 같이 하나님께 다 바치겠다고 토지 전부를 판 후에, 다 바치고 나면 무엇을 먹고살까 염려가 되어, 부부간에 다시 의논하여 얼마만 바치고 나머지는 감춘 것이 육신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베드로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할 때에는 대 사도의 자격이 있었다(마 16:16). 그때 주님은 칭찬하여 "반석"이라고 하셨고, 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며 그 위에다 교회를 세우시겠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조금 후에는 주님에게 "십자가를 멀리 하읍소서"라고 하였다. 이것은 육신의 생각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꾸짖으셨다(마 16:23). 이것이 의심하는 것이다.

시험에는 걱정, 근심, 두려움, 낙망 등이 따라온다. 평안할 때는 아무렇지 않다가 시험이 들어을 때 그런 생각이 따라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마귀가 넣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주께 부르짖어서 물리쳐야 된다. "주여! "하면 마귀가 다 도망치게 된다. 그러나 한 마디 해서 달아나는 마귀도 있지만 기회를 보아 다시 노리려고 얼마 동안만 물러서는 마귀도 있다. 이 때는 계속하여 주께 부르짖어서 완전히 물리쳐야 한다. "주여! "를 부르짖되 입으로만 하지 말고 마음속으로 한결 같이 위를 향하여 나아가면서 부르짖어야 한다.

둘째, 믿음에서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셋째, 말씀대로 될까 안될까 하여 두 마음을 품지 말라는 것이다.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요동하게 되면 어지러워지고 무너지고 파괴된다. 건설도 전진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믿음에 섰다가 세상으로 돌아섰다가 하면 안 된다.

• 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요동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을 수가 없다. 이것은 마치 밭에 곡식을 심었다가 며칠 후에 또 밭을 갈고 또 심었다가 며칠 후에 또다시 가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하면 어찌 농사를 할 수 있겠으며 어찌 열매를 거둘 수 있겠는가?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다.

•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전적으로 믿는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믿는 마음과 안 믿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자신의 마음과 인격이 정함이 없는 사람이 되며,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하나님의 신령한 선물은 하나도 받을 수 없다.

[히브리어 원어 성경 강해 히브리서] 천사보다 뛰어난 그리스도(히 1:1-8)

 

[히브리어 원어 성경 강해 히브리서] 천사보다 뛰어난 그리스도(히 1:1-8)

히브리서 1장에서 예수님은 천사보다 뛰어난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천사도 하나님께서 창조한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며 하나님입니다. 이 세상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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